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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역사 이야기

유대교의 아브라함, 그리스도교의 예수, 이슬람교의 무함마드

by 브라보 오스카 2024. 2. 20.

왜 이렇게 중동지역은 항상 전쟁이 끊이지 않을까? 가장 큰 문제는 종교적 민족적 갈등이 크다. 갈등의 주요 원인인 이슬람과 유대교의 대립은 결국 수차례의 연합 전쟁과 테러와 학살로 비화하여 아직까지도 진행중이다.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뿌리는 하나이며 모세를 예언자로 추종하고 있다.

이지역에서 격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는 사실 같은 뿌리이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다. 모세를 예언자로 추종하며 그 외에도 바하이교, 만다야교, 드루즈교 등 비주류 종교들도 같은 뿌리이다.

그들이 믿는 세상의 창조는 이러하며, 세 종교 모두 이 창조론을 믿고 있다.

유일신이 인간 세상을 6일에 걸쳐 창조하였고, 하루를 쉬었다. 신은 자신을 닮은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 자손을 퍼뜨리고 살다가, 후손인 노아가 신의 계시를 받고 방주를 만들어 홍수를 피해 인류의 새역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살다가 아브라함이 나오고 신의 계시를 받아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었다. 구약성경, 타나크 1권에 나오는 창세기에 나오는 내용이며 이때가 기원전 2100년경이다.

1. 유대교의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살다가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인 가나안 땅으로 식솔들을 이끌고 간다. 거기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번창해 간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살기가 힘들어 지자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서쪽으로 이동을 하여 이집트로 간다. 이집트인들은 이민족을 환영하지 않았다. 탄압과 핍박을 하였으며 노예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이를 견디지 못한 모세와 이민족들은 이집트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간다. 그러면서 홍해를 가르는 홍해의 기적을 보이고 시나이 반도의 시나이산에서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십계명도 나오게 된다. 그러면서 모세는 신과 히브리이인들과의 메신저가 된다.

기원전 2100년, 아브라함과 그의 추종자들은 처음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살다가 가나안땅으로 건너온다. 그는 부인 사라가 있었는데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그의 첩 하갈이 있었는데 그녀가 아들 이즈마엘을 낳는다. 아브라함은 이즈마엘을 매우 아꼈으며 그의 아내인 사라 역시 이즈마엘을 친 아들처럼 아껴주었다. 후에 사라의 아들이 태어나게 되는데 그의 이름은 이삭이다. 아브라함은 신의 계시를 듣고 첩과 그 아들인 하갈과 이즈마엘을 사막으로 추방하게 된다. 이때부터 이즈마엘은 후손들을 거느리고 지역의 왕이 되면서 그들은 아랍인이 된다. 한편 이삭의 후손은 가나안 땅에서 유대인으로 성장하며 이스라엘 왕국을 거느리게 된다. 이삭의 아들 야곱, 이집트 이동, 400년동안 노예로 살면서 이집트인들의 핍박과 탄압을 받게 된다. 이를 견디다 못해 모세가 나타나고 모세는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가나안땅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성경의 출애굽기이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가나안땅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홍해를 가르는 기적과 시나이산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십계명을 설파하고 가나안땅으로 도착하게 된다. 그때부터 모세는 신과 히브리이인들을 이어주는 메신저가 된다. 이 민족은 로마 정복시기까지 가나안땅에서 살게 된다. 로마에 대항하는 유대인이 저항하게 되는데 로마는 관용없이 유대인을 대학살하게 된다. 가나안땅에 살고 있던 260만명중에 반이 죽고 나머지 일부 30만명의 노예를 이끌고 로마로 와서 콜로세움을 세우게 된다. 이떄부터 유대인들은 이때부터 전세계에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2. 그리스도교의 예수

로마의 지배하에 있던 가나안땅에 예수가 등장하게 된다. 즉 예수는 유대인이다. 민중을 위해 유대인 기득권층인 제사장들에게 저항을 하였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이 로마집정관 빌라도에게 신고를 하게 되고 결국 예수는 죽게 된다. 여기서부터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을 싫어하게 되었다.

3. 이슬람교의 무함마드

한편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아라비아반도의 사막에서부터 살기 시작하여 점점 홍해의 해변으로 옮겨와 메디나와 메카라는 큰 도시에 부족들을 이루며 살게 된다. 그러면서 AD7세기에 미청년 무함마드가 나와 신의 계시를 설파하고 다닌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였지만 당시 다신교를 믿고 있던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평등 사상을 부르짖는 무함마드를 박해했다. 결국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메카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것을 헤지라라하며 이슬람교의 원력으로 삼는다. 이때가 AD622년이다. 이때 무함마드는 초생달을 보게 되는데 이때부터 초생달이 이슬람교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는 민중의 지지를 업고 아라비아를 통일하며 아랍민족의 최고 지도자 겸 통치자가 된다. 무함마드 사후에 민족의 지도자이자 무함마드의 교리를 이어갈 이슬람 종교의 지도차 칼리프를 선출하게 된다. 무함마드의 정신을 가장 잘 이어받고 지도력이 뛰어난 사람을 뽑았다고 한다. 4대 칼리프까지 이어졌다고 하는데 이 시기를 정통 칼리프 시대하고 한다. 이후 강력한 지도자 왕족이 나타나는데, 무아이아 왕족의 우마이야 왕조이다. 이떄부터 칼리프는 세습이 되기 시작한다. 이때 680년 4대 칼리프의 아들 후세인은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세습을 반대하여 봉기를 일으켰고 우마이야 왕조의 피의 진압이 있었는데, 이를 카르발라의 학살이라 한다. 이후 시아파와 수니파로 이슬람은 양분되게 된다.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통이 칼리프가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수니파는 종교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칼리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아파는 이란을 필두로하여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이며, 수니파는 사우디가 맹주이면서 이집트, 아랍에미레이트 등이다. 규모로는 수니파가 전체의 90%를 차지하여 압도적이다. 따라서 이란과 사우디는 항상 대립하며 대리전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사우디는 이란을 매우 경계하는데, 이란이 1970년대 호메이니를 위시하여 혁명이 성공하여 왕정이 무너졌다. 사우디를 비롯한 다른 아랍국가들은 대부분 왕정국가인데 이란은 그들의 혁명정신을 주면 국가로 퍼트리려 하고 있어 그들의 권력이 무너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또한 사우디는 친미성향이며 이란은 대표적인 반미국가이다. 종교적인 이유 외에도 사우디와 이란이 대립하고 있는 정치 외교적인 이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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