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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역사 이야기

알렉산드리아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

by 브라보 오스카 202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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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리스 시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여성 수학자이자 철학자 천문학자인 히파티아(Ὑπατία, Hypatia, 355-415)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히파티아가 아빠의 시선을 끌게 된 것은 당시 여성은 노예와 마찬가지로 시민권을 가진 남성의 소유물이었으며 사회적으로나 특히 아카데믹 측면에서 전혀 두각을 나타낼 수 없는 존재였는데 그 시대적 편견을 깨고 세상을 놀라게 한 여성학자였기 때문이야.

▶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나일강 유역의 서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제에 의해 세워진 계획도시였으며 로마시대에 크게 발전한 도시이다.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라도 하듯 이 도시에 엄청난 투자가 일어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알아보고 가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알렉산드리아와 그곳에 있던 대도서관이야. 알렉산드리아(Αλεξάνδρεια, Alexandria)라는 도시는 이집트 나일강 하구의 서쪽 연안에 지중해와 접해 있는 항구 도시야. 알렉산드리아는 BC331년 마케도니아의 정복자 알렉산드로스(정식 명칭은 알렉산드로스 3세 메가스, Αλέξανδρος Γ' ο Μέγας Alexander III Magnus, Alexander the Great, BC356-BC323)에 의해 세워진 계획 도시야. 오리엔트의 문명과 문물을 그리스로 전해주는 통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어. 알렉산드리아라는 말 자체가 알렉산드로스의 땅이라는 뜻이지. 알렉산드로스의 부하였던 프톨레마이오스(Πτολεμαῖοι, Ptolemy, BC367-BC283)가 이 지역의 통치자가 되면서 번성하게 되었어. 알렉산드리아는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되는 곳이었기 때문에 당시 문명 생활권의 모든 물자가 다 있었다고 보면 되고 서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시라고 평가받고 있어. 이 도시에는 물자를 따라 상인들만 모여든 것이 아니라, 여행객은 물론이고 신문물과 지식을 찾아오는 지성인들도 많이 있었어.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가 여기 출신이지. 이 도시에서는 그리스, 이집트를 필두로 아라비아, 시리아, 히브리, 페르시아, 누비아, 페니키아, 이탈리아, 갈리아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들어 각 지방의 상품과 사상을 교류했어. 그래서 인구는 50만이나 되는 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지.

▶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과거와 현재. 고대 도서관은 지식의 중심이었다. 현대에도 그 명성을 이어나가고자 현대에 엄청난 규모의 도서관을 건립했다.
 

이 지역의 통치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후원을 받아 알렉산드리아에 대도서관이 생기게 되었어. 세상의 모든 책이란 책은 파피루스에 필사해서 보관을 하게 되었지. 철학, 천문학, 수학, 정치학, 의학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방대한 자료를 보유하게 되었어. 당시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책 한 권을 만들려면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베껴 써야 하는데 이를 필사(筆寫, transcription 쉬운 말로 handwriting)라고 해. 종이는 또 어땠을까. 둘둘마는 파피루스에 두루마리 형태로 책이 만들어졌던 거야. 그러니 지금의 서고와는 비주얼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겠지.

▶ 히파티아는 로마시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한 여성 수학자, 천문학자, 철학자이며 신플라톤주의자이다. 그녀의 지성뿐만 아니라 미모까지도 세상을 압도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는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고 그중 한 명이 히파티아야. 참고로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유명한 유클리드(Εὐκλείδης, Euclid, BC4C중반-BC3C중반), 증기기관인 ‘페론의 공 aeolipile’을 개발한 헤론(Ήρων, Heron, 10년경-70)도 이곳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야. 또한 구의 측정을 통해 지구의 크기를 추정한 에라스토테네스(Ερατοσθένης, Eratosthenes of Cyrene, BC274-BC196)는 키레네(Cyrene, 지금의 리비아 지역) 출신으로 알렉산드리아 출신은 아니지만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을 역임했던 경력으로 역시 이곳에서 활약을 했지. 히파티아는 아버지 테온의 외동딸이었다고 해. 테온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관장이자 수학과의 저명한 교수였어. 알렉산드리아가 많은 학자들이 모여서 연구하는 곳이었고 교육열 강한 아버지 테온의 영향으로 히파티아는 자연스럽게 학자의 길을 가게 되었어. 히파티아에게 테온은 "네가 생각하는 권리를 비축하여라. 왜냐하면 틀리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라고 하며 생각하기와 공부하기에 대한 훈련을 지독하게 시켰다고 해. 테온은 히파티아가 지식을 형성하고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식별력을 가르쳐 주었어. 또한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학습 방법뿐만 아니라 식이요법, 미용체조도 고안했다고 해. 그래서 그런지 히파티아는 지적 능력뿐 만 아니라 미모도 상당해 많은 남성들로부터 구애를 받았었어. 하지만 그녀는 “나는 진리와 결혼하였다”라며 평생 미혼으로 살았어.

그녀는 외국을 여행하면 가는 곳마다 왕족과 같은 대우를 받고 그녀의 강의를 듣고자 각지에서 학생과 학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해. 히파티아는 철학적으로 신플라톤주의자였어. 신플라톤주의는 설명하자면 길지만 축약하면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실의 차이점과 구분을 없애며 단지 세계는 일자-정신-영혼-물질의 단계로 이루어지는 일원론을 주창한 거야. 당시에는 로마에서 기독교를 공인하고 로마 전영토의 기독교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기독교에서는 유일신 사상에 위배되는 모든 것은 이단으로 봤으며 다양한 학술 활동도 유일신에 반한다하여 차츰 기독교와 학계 간에 갈등이 생기게 되는데, 히파티아는 대표적인 시대적 학자였기 때문에 반대하는 무리들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어.

▶ 2009년에 개봉한 스페인 영화 아고라. 레이철 와이즈가 주연한 작품으로 작품성과 재미 모두 잡은 훌륭한 영화이다. 근데 흥행에 성공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412년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테오필루스(Θεόφιλος, Theophilus, ?-412)가 후계 구도를 만들어 놓지 않고 죽는 바람에 그의 조카 키릴로스(Κύριλλος, Cyril, 376-444)와 부주교 티모시 사이에 권력투쟁이 일어나게 돼. 이는 양측의 지지자들에 의해 폭력사태로 이르게 되고 결국 키릴로스가 승리하게 되지. 승자 키릴로스는 티모시(Timothy II, ?-477) 측을 절단 내는 작업에 돌입하는데 티모시를 지지했던 일부 유대인들 때문에 유대교 회당을 모두 폐쇄하고 유대인들을 추방하게 되지. 이를 보다 못한 이집트 총독 오레스테스(Ὀρέστης, Orestes)는 극대노했고 로마의 황제에게 보고하자 키릴로스는 오레스테스를 다시 적으로 간주하게 돼. 하필 이때 히파티아는 오레스테스의 친구로서 자주 조언을 해주던 사이였다고 해. 그래서 명성이 높던 히파티아를 제물로 본보기를 삼고자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려 그녀를 이교도 마녀로 포장해 버리지. 사실 기독교에서는 과학과 학문을 이교도의 사상이라고 폄훼했으니 기독교인들의 미움을 한몸에 받을 수밖에 없었어. 결국 415년 이를 사실로 믿은 기독교인 베드로가 무리를 이끌고 히파티아를 찾아갔어. 히파티아는 이러한 위험에도 무릅쓰고 자기주장을 가르치고 글로 발표했다고 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히파티아는 마차를 타고 출근하고 있었는데 베드로 무리는 폭도가 되어 그녀를 마차에서 끌어내려 옷을 벗기고 전복 껍데기로 만든 무기로 그녀의 살을 뼈에서 발라낸 다음, 남은 시신과 그녀의 저술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어. 그녀의 처참한 죽음은 로마 전체를 발칵 뒤집어 노면서 키릴로스가 위기에 처했지만, 키릴로스의 세력이 워낙 커서 로마 황제도 어쩔 수 없이 키릴로스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 나중에 키릴로스도 그녀에게 했던 짓이 너무했다 생각했는지 성인의 반열에 올려줬다고 해.

▶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왼쪽 흰옷을 입고 정면을 응시하는 이가 히파티아이다. 유일한 여성이면서 그림 안에서 유일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라파엘로는 원래 히파티아를 그림 가운데 넣고 싶어 했었다고 한다.

 

영화 아고라(Ágora, 2009)가 히파티아를 중심으로 그린 스페인 영화야. 한번 보면 좋을 것 같아. 평도 좋은 편이야. 그리고 라파엘로가 그린 바티칸 사도궁의 아테네 학당에도 히파티아가 등장하지. 원래 라파엘로는 히파티아를 중앙에 배치해서 그리려 했다고 해. 하지만 당시 여전히 여자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정도가 약했던 시대인지라, 화주였던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라파엘로에게 고집을 꺾지 않으면 앞으로 화가로서의 경력을 단절시키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결국 그녀를 왼편으로 이동시켜 그렸어. 라파엘로도 그녀의 위대함을 인정했다는 얘기지. 이 그림 왼편에 흰옷을 입고 있는 이가 유일한 여성인 히파티아야. 그녀는 노래에도 등장하는데, 스웨덴의 메탈 밴드 Ghost의 Kaiserion(2022) 그녀를 추모하며 만든 곡이라고 해. 메탈과 고대 수학자의 조합이라, 완전 생뚱맞은 것 같아. 그냥 들으면 평범한 메탈곡으로 생각이 될 수 있는 곡인 것 같지만 가사는 히파티아를 그리워하며 아주 원색적인 가사로 표현하고 있어.

그리고 그녀는 절세의 미녀이기도 했다고 했지. 그녀에게 구애하는 남성들에게 물러가라고 자신이 차고 있던 천 생리대를 던졌다고 해.

 

Daddy’s Point of View =====================================================

 
▶ 내용도 번역도 훌륭했던 코스모스. 중간에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매우 어려워 고비도 있었지만 결국 끝까지 읽어 냈던 책이다. 한 번 더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아주 훌륭한 책이다. 칼 세이건은 천재인 것 같다.

 

고백하자면 히파티아를 알게 된 것은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 1934-1996)의 코스모스(Cosmos)를 읽으면서였어. 마지막 장에 고대 지식의 보고이자 원류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설명하면서 그녀의 이야기가 나와. 그녀가 뛰어난 수학자이자 엄청난 미인이며 독신이고 처참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아빠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그녀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너희들과 공유하고 싶어 이렇게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

 
▶ 우리가 밀라노의 암브로지오 박물관에 갔을 때 관람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스케치. 정말 웅장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보니 여전히 히파티아는 왼쪽에 위치해 있다.

아마 히파티아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여자는 노예와 같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던 시대에 살면서, 2천 년 가까이 르네상스를 거쳐 현대에까지 지성의 아이콘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은 정말 성별을 뛰어넘어 훌륭한 업적을 가진 학자이지 않았을까 싶어.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지. 학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남성 위에 군림하는 여자들이 판치며 여성 대통령도 나오고 여성 재벌에 CEO, 여전사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시대에 과연 2천 년 후에도 그 이름이 기억될 인물은 누가 있을까? 그만큼 히파티아가 대단하다고 볼 수 있지. 이제 여성도 단지 성별로만 기록되지 아무런 차별이 없잖아. 그런 시대에 사는 우리 지뽕이는 얼마나 다행인거니. 그러니까 너희도 여자라서 못한다, 안된다라는 말은 하지 말도록 하며, 여자에 뒤진다고 쪽팔려하거나 피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래서 아빠는 지금 설거지하러 간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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