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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역사 이야기

카르타고와 로마의 대결, 한니발의 로마 영토 유린, 카르타고의 멸망

by 브라보 오스카 2024. 1. 17.

#한니발 #포에니전쟁 #시칠리아 #카르타고 #페니키아 #메시나 #시라쿠사 #하밀카르 #칸나이전투 #스키피오 #자마전투 #한니발무덤

너희들은 로마는 알아도 카르타고는 모를 것이다. 카르타고도 고대시대 때 한때 지중해를 주름잡는 패권국이었고 로마와 대등하게 경쟁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카르타고도 한니발을 빼고는 역사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니발은 아마도 아프리카의 열대 코끼리를 이끌고 스페인에서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 진영을 침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한니발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군사 전략과 리더십을 가진 진정한 명장이며 영웅이었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자꾸나.

1. 카르타고와 로마의 대결

카르타고와 로마가 대결하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1차 포에니 전쟁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포에니는 페니키아의 영어식 발음이다. 페니키아는 이후 설명하도록 하겠다.

카르타고는 현재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발현한 도시 국가이다. 동방의 페니키아인, 즉 가나안 땅에 뿌리를 두고 있던 민족이 이주하여 건설한 도시 국가였다. 주로 농업과 상업을 위주로 국가가 팽창하였으며 한창 전성기 때인 BC3세기에 서로는 아프리카 북서부 해안인 현재의 지브롤터, 스페인 남부 지역까지 영토가 확대되었고 동으로는 이집트 동부까지, 북으로는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전역 및 시칠리아 일부를 그들의 영역으로 확대하였다. 당연히 이탈리아 전역을 장악하며 한창 팽창 중이던 로마와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지점이 시칠리아가 되었던 것이다.

시칠리아는 일부는 카르타고에 의해, 일부는 로마에 의해 점령되어 있던 상태였다. 그 중간 지점에 약소 도시국가들이 서로 치고받고 하는 중이었다. 그리스계인 메시나가 내전에 휘말려 주도 계층이었던 그리스계가 라틴계에 공격당해 점령당할 위험에 처하자 옆에 있던 그리스계 시라쿠사가 메시나를 침략한다. 메시나는 시라쿠사의 공격에 위태롭게 되자 주변의 강국 로마와 카르타고 두 국가에 동시에 SOS를 친다. 이에 서로 시칠리아를 차지하고 싶어 했던 두 국가는 이때다 싶어 대규모 지원군을 파견한다. 둘 다 메시나를 도와주러 왔다가 자기들끼리 싸우게 되는 판이었다.

메시나에 먼저 들어온 것은 로마였다. 로마는 메시나와 시라쿠사를 화해시키면서 싸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메시나에 주둔하게 된다. 하지만 카르타고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면서 시라쿠사와 동맹을 맺고 메시나를 공격했으나 대패를 당하고 만다. 카르타고의 편을 들었던 시라쿠사는 다시 로마의 겁박에 로마 편을 들게 된다. 이에 열받은 카르타고는 본국에서 대규모 군단을 이끌고 시칠리아에서 로마와의 일전을 위해 진격한다. 본격적인 1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가 BC264년.

카르타고의 본국이 바다 건너 있었으니 로마와 해전이 먼저 일어났다. 카르타고는 원래 해상 무역으로 확대한 국가이다 보니 해군이 강했고 로마는 육상전이 강했다. 이에 로마는 초기 해전에서 밀리다가 까마귀배로 불리는 코르부스라는 배를 고안해 상대의 배를 자신들의 배로 끌어당겨 딱 붙여 육상전처럼 육박전으로 전투를 전개하여 결국 로마가 승리를 하게 된다. 로마는 카르타고가 본토에서 계속 지원군을 파견하자 사령관 레굴루스를 앞세워 아예 카르타고 본진을 쳐들어 간다. 해상전에서 대승을 거두고 카르타고의 본진으로 입성하였다. 위기를 느낀 카르타고는 용병 크산티포스를 고용해 전투를 벌여 로마의 사령관 레굴루스를 생포하고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다.

카르타고는 로마에게 레굴루스를 보내줄 테니 전쟁 그만하고 패배를 인정하라 했으나 로마는 이를 거부한다. 카르타고는 레굴루스를 처형하고 다시 시칠리아로 진격한다. 재밌는 것은 이때 카르타고 본토에서 군인들뿐만 아니라 코끼리 군대까지 데리고 왔다. 지금으로 치면 탱크와 같은 무기였던 것이다. 이때 카르타고에 등장한 장군이 있었으니 그가 하밀카르 바르카이다. 누구냐고? 좀 이따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시칠리아에 와서 게릴라 전술로 로마군을 무척이나 괴롭혔다. 코끼리의 힘이 컸다고 한다. 로마 병사들은 코끼리에 대한 공포감까지 들었다고 한다. 결국 로마는 팔레르모까지 몰렸다. 하밀카르는 본국에 전투에 필요한 자원을 요청했으나 하밀카르가 잘나가는 것을 두려워한 집권 세력이 지원을 미루어 하밀카르는 전투의 교착상태에 빠진다. 이틈을 타고 로마는 팔레르모에서 적극적인 공격을 하였고 특히 코끼리를 창으로 공격해 상처를 깊게 내서 이 상처로 인해 코끼리가 사방 팔방으로 돌아다니며 오히려 카르타고 군인들을 공격하고 다녔다. 다시 로마의 공세에 의해 카르타고가 수세로 밀리기 시작했고 카르타고 본국에서 보급품을 품고 오는 지원군과의 해상전이 트라파니 앞바다에서 치러진다. 이 전투에서 로마가 대승을 거두고 카르타고는 더 이상 시칠리아 탈환을 포기하고 로마와 강화를 한다.

로마는 3천2백 달란트라는 엄청난 배상금과 시칠리아를 비롯한 여러 섬들을 로마에게 헌납하면서 1차 포에니 전쟁은 끝나게 된다. 이때가 BC241년이니 20년 넘게 시칠리아 주변에서 전쟁이 있었던 것이다.

"제가 장성한 때에, 불과 칼을 들어 로마인들을 쫓아가 트로이의 운명을 다시 행하겠습니다.

신들께서는 저의 생애를 막지 않을 것이며, 칼을 금하는 조약도, 알프스의 높음도, 테르페이아의 바위도 그러할 것입니다.

저는 맹세합니다. 우리의 전쟁 신의 신성에, 엘리사(디도)의 그림자에."

9살 한니발이 어른이 되면 반드시 로마를 처 부수겠다고 신 타니트에게 맹세한 구절

2. 한니발의 로마 영토 유린

히말카르는 전쟁에서 패한 책임을 강제로 지게 되어 이베리아반도로 쫓겨난다. 명목은 이베리아 지역의 관리 강화였지만 사실상 추방이었다. 하지만 히말카르는 여기서 이 지역을 아주 강성하게 만들어 신 카르타고라는 식민지를 건설하고 본국에 못지않은 강력한 힘을 키우게 된다. 앞서 언급한 하밀카르의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 지역 총독으로 나서게 되는데 그가 바로 역사적 인물 한니발이다. 그는 타도 로마를 외치며 사군툼을 점령하고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그때가 BC218년, 그의 나이 28세였다.

로마는 한니발의 침공에 이탈리아 본토를 방어하고자 마르세유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해 한니발의 군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니발은 대군과 코끼리 군단을 이끌고 마르세유를 우회해 피레네산맥과 알프스산맥을 넘어 북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I will either find a way or make one."

- 알프스를 넘으려는 계획을 듣고 말도 안 된다는 부하 지휘관에게 한니발이 던진 말

한니발이 피레네, 알프스산맥의 험준한 산을, 그것도 그 추운 겨울에 넘어 진군했다는 것은 당시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이 로마를 재침공을 하면서 알프스산맥을 넘고 근대에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었다고는 하나 둘 다 여름에 넘었다. 그래서 알프스 월담은 한니발만큼 이슈화가 되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 뭐든지 첫 번째 이어야 하고 엄청난 허들을 이겨냈을 때 진정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 알프스를 건너는 한니발과 코끼리를 포함한 그의 군대

한니발이 굳이 알프스를 넘어간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추측을 한다. 마르세유 인근에는 로마나이제이션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주변 도시들이 로마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기 때문에 군사 지원과 보급 지원에 있어 원정군인 카르타고는 로마를 상대하기 매우 어려운 입장이었다. 반면에 북 이탈리아 지역은 여러 도시들이 로마에 복속은 하였으나 여기의 주민족이었던 갈리아가 로마의 식민화에 크게 반발하고 저항하고 있어 한니발 편으로 끌어들이기에 매우 유리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니발은 군사적 전략뿐만 아니라 주변 정세까지도 파악한 천재적인 군인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니발이 이끌었던 군대는 모두 용병들이었다. 즉 돈 받고 또는 전쟁 후 전리품을 획득하는 조건으로 순전히 이기적인 목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었다. 이들을 15년 동안 이탈 없이 한니발을 위해 전투에 참여했다는 것은 보통의 리더십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감은 눈으로 작전을 생각하고, 뜬 눈으로 적을 바라보겠다. 한니발은 이탈리아로 넘어온 이후 200여 키로에 달하는 늪지대를 통과하는 강행군 중 많은 병사와 코끼리뿐만 아니라 그의 한쪽 눈까지 잃었다."

- 그는 걱정하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한다.

한니발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연전연승을 하며 중부까지 진출한다.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자 여러 도시들이 카르타고 편에 서게 된다.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들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까지 로마는 영토를 잃게 된다. 로마가 멸망하기 전까지 이렇게 자국의 영토가 유린당한 적은 전무후무하다.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전쟁사에 길이 남을만한 빛나는 전투를 꼽자면 단연 칸나이 전투이다. 한니발은 전투 시 지역의 지형지물, 주변 정세, 적군의 심리, 적국의 내정 상황까지 모두 파악하여 전투에 임했다. 가히 철저한 사전 준비와 정보력이 있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한니발의 군사적 행동에 로마군이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집정관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전면전보다 치고 빠지는 교란전으로 대응하였다. 보통 원정군이 행하는 전술이었으나 한니발의 기세가 워낙 강했고 주변의 도시국이 모두 한니발 편에 서 있었고 상대적으로 보급에 대한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전술을 취했다. 이로 인해 한니발도 상당히 고전하며 이탈리아 중부에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리하여 한니발은 로마를 돌아 이탈리아 남부로 하였다. 칸나이에 진영을 정비하고자 머물게 되었다. 로마 중앙에서는 빨리 전투를 전개하지 않는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해임하고 바로와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를 집정관으로 선출하여 8만 7천의 대군을 이끌고 한니발이 머물고 있는 칸나이로 진군한다. 한니발은 5만의 군사를 중앙에 약한 군, 양옆에 정예군을 배치하는 초승달 전법을 통해 로마군 7만을 궤멸시킨다. 이로 인해 로마는 거의 모든 영토를 잃고 로마마저 함락될 위기에 처한다.

반면에 한니발의 지원을 위해 카르타고 본국과 에스파냐 지역에서 대규모 군대가 이탈리아 본토로 향했다. 하지만 한니발만큼 훌륭한 장군이 없고 모두 이기적 용병으로 군대가 구성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 나라와 가족을 지킨다는 로마의 시민군을 이겨내지 못하며 결국 한니발을 지원하지 못했다. 게다가 카르타고 본국에서 한니발의 성공을 시기하는 세력들까지 등장하여 한니발은 홀로 싸워야 하는 고립무원의 형국이 되어 버렸다.

한니발은 스키피오라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게 된다. 스키피오는 원래 에스파냐 출신이어서 로마가 이탈리아 전역에서 한니발에 유린 당하고 있는 와중에 한니발에 대한 본국의 지원과 보급을 끊어버리려 했다. 그는 에스파냐에서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과 마고를 물리쳐 카르타고 세력을 에스파냐에서 밀어내 신 카르타고는 결국 함락당하고 만다. 여세를 몰아 스키피오는 아프리카로 이동하여 카르타고 본국을 위협한다. 한니발은 본국의 SOS에 응해 이탈리아에서 아프리카로 카르타고를 구하기 위해 건너온다. 하지만 스키피오와의 자마 전투에서 패하면서 결국 BC202년에 제2차 포에니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된다.

한니발은 로마의 추격을 피해 소아시아로 망명을 한다. 지금 이스탄불 지역의 비티니아 왕국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장군이 되어 여러 전투에서 공을 많이 세우게 된다. 하지만 로마의 세력이 비티니아까지 미치게 되면서 비티니아 왕은 한니발을 넘기기로 결정한다. 결국 로마의 백인대장 중 한 명이 자신을 찾은 것을 알고 항상 몸에 지니고 있던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여 6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3. 카르타고의 멸망

로마는 카르타고에게 속국임을 인정하라고 강요하였다. 하지만 카르타고의 시민들은 오히려 로마의 후원을 받고 있었던 이웃 도시 국가 누미디아를 침공하자 로마는 누미디아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카르타고를 공격한다. 카르타고는 로마와의 강화를 주장하는 온건파를 처형하며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공성전에 들어갔다. 이것이 제3차 포에니 전쟁이다. 여자들도 참전하여 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석궁의 밧줄 재료로 제공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로마의 강력한 군사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카르타고는 3년간의 전쟁에서 패하고 만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노예가 되었고 국가의 재생을 뿌리까지 뽑아내려 카르타고 본국의 모든 마을을 불태워버리고 불이 꺼지고 나서는 소금을 뿌려 다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만들어 카르타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한니발은 로마가 망할 때까지 엄청난 두려움으로 로마인들에게 남아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니발이 문 앞에 있다라는 말로 우는 아이들을 달랬다고 한다.

또한 한니발은 자마 전투 이후 스키피오와의 만남에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스키피오 : 가장 위대한 장군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한니발 :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이지요.
적은 병력을 가지고 대군을 무찔렀고 인간이 일찍이 가보지 못한 세상의 끝까지 갔기 때문이오.
스키피오 : 두 번째로 위대한 장군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니발 : 피로스요.
진영을 잘 짜는 방법을 처음 생각해냈지. 지형에 따라 군대를 잘 활용하기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소.
사람들의 지원을 잘 얻어냈고, 그래서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에도 이탈리아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냈소.
그들이 그 땅에서 잘 살아왔는데도 말이오.
스키피오 : 세 번째로 위대한 장군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니발 : 나!
스키피오 : (웃음을 터트리며) 하지만 당신은 자마 전투에서 나에게 지지 않았소?
한니발 : 만약 내가 이겼다면 내가 알렉산드로스, 피로스, 기타 세상의 모든 장군들보다 윗길이라고 말했을 거요.

저 자신감 무엇! 남자다, 한니발!

Daddy's Point of View ========================================================================

한니발은 아빠가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하나다. 남자 중의 남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뛰어난 지략과 정보력도 있지만 가장 훌륭한 점은 백인백색의 오합지졸 용병들을 15년간 그를 추종하게 만드는 강력한 카리스마다. 사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에 막대한 수모를 제공했던 한니발이 존경과 학습의 대상으로 묘사되는 것을 보면 정말 훌륭한 위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장군을 가지고 있던 카르타고가 로마를 이겨내지 못했던 것은 한 사람에 의해 세상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며 그를 추종하는, 또는 뜻을 같이하는 능력 있는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지후와 건우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로 주변에 훌륭한 조력자 내지는 멘토가 많은 인물로 성장하길 바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가 이탈리아와 터키에 있을 때 여행을 하면서 여러 도시들에 한니발의 흔적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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