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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모건은 당대 최대의 부자, 로스차일드 가문의 대리인 조지 피바디와의 만남,
본격적인 금융업의 빅 플레이어로 성장하는 발판이 된다.
1. 조지 피바디
JP모건의 역사는 1840년대의 조지 피바디(George Peabody, 1795-1869)라는 인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바디는 미국의 매사추세츠 태생으로, 원래 가난한 집 출신이다. 10대때부터 장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장사가 좀 되었는지 금융업에도 손을 대어 미국의 채권을 유럽에(정확히는 주로 영국 런던에) 거래하는 중개업무를 하였다. 미국과 유럽을 오가면서 런던의 귀족들과 친분이 쌓이고 네트워크가 형성이 되면서 런던에 자리잡고 1837년 은행을 설립하는데, 그 은행이 머천트 뱅크(Merchant Bank)이다. 그러던 와중에 피바디에게 결정적인 운명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그 유명한 로스차일드와 선이 닿았던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유대인으로 돈은 많았지만 신분이 미천하여 귀족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귀족들과 친하게 지내던 피바디에게 비밀 홍보를 맡기게 되면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대리인 역할을 하게 된다.
피바디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후손이 없었다. 막대한 사업적 영향력과 재산을 물려줄 2세가 없었다. 여담이지만 피바디는 결혼은 하지 않고 혼외로 낳은 자식은 좀 있었다고 하나, 재산을 물려줄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막대한 부를 사회에 기부하여 현재까지도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인의 소개로 주니어스 스펜서 모건(Junius Spencer Morgan, 1813-1890)을 만나게 되는데, 이 사람이 JP모건의 아버지이다. JS모건은 피바디와 다르게 아주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모건 가문의 미국 역사는 마일즈 모건(Miles Morgan, 1616-1699)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1636년 영국 웨일즈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면서 메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 정착을 한다. 농장을 경영하면서 부유하게 살았지만 조셉 모건 3세(Joseph Morgan III, 1780-1847)가 스프링필드에 있는 모든 농지를 팔아 하트포드(Hartford)로 옮겨 하트포드 커피 하우스(Hartford Coffee House) 인수를 시작으로 하트포드 은행, 애트나 화재보험사(Aetna Fire Insurance Company)설립에 투자를 하여 본격적인 금융업에 진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 JS모건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당시 돈으로 100만달러를 상속받았다고 한다.
그는 피바디를 만나 피바디가 소유하고 있던 상업은행 조지 피바디 컴퍼니(George Peabody Co.)의 동업자 겸 파트너로 일을 하게 된다. 10년간 동업 조건이라는 계약 관계로 인해 10년뒤 피바디는 자신의 자본을 빼서 나가면서 회사 이름에서 본인의 이름까지 빼 달라고 한다. 이에 JS모건은 JS모건 컴퍼니(JS Morgan Co.)라는 상업 은행으로 1864년에 독립을 하게 된다.
1857년 피바디와 JS모건의 회사에 한 사람이 취업을 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JS모건의 아들 JP모건(1837-1913)이다.
2. JP모건의 탄생
초대박 다이아 수저 JP모건(John Pierpont Morgan, 1837-1913)은 아버지 JS모건과 어머니 줄리엣 피어폰트(Juliet Pierpont, 1816-1884) 사이에서 코네티컷에서 태어나게 된다. JP모건의 어머니이자 JS모건의 부인인 줄리엣 피어폰트 또한 금수저였다 한다. 아버지, 그러니까 JS모건의 장인은 시인이자 변호사이자 목사였던 존 피어폰트(John Perpont, 1785-1866)다. 그의 동생이 제임스 피어폰트(James Pierpont)라는 사람인데 그가 예일대학교의 창립자이다. 재밌는건 그가 크리스마스 캐롤 징글벨(Jingle Bell)을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사실 추수감사절을 위한 노래로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제목은 노래의 가사에 등장하는 ne Horse Open Sleigh였는데, 친구의 추천으로 제목을 Jingle Bell로 바꿨다고 한다.
JP모건은 스위스와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익혔다. JS모건은 아들 JP모건의 가르침에 집중했다고 한다. 33년간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이를 평생 소중히 간직했다고 한다. JP모건은 아주 똘끼가 대단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10대때 어느 투자회사에 인턴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상부에 보고도 안하고 브라질의 커피에 투자하였다가 쫄딱 망해서 회사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모건의 나이 24살 무렵이었던 1861년에 남북전쟁이 터진다. 65년까지 이어진 이 전쟁에서 그에게 전쟁은 엄청난 기회로 작용한다. JP모건은 딜러를 통해 자금을 제공하면서 북군으로부터 총을 3.5달러에 구입하여 약간 손질을 해서 22달러에 되팔았다고 한다. 6배가 넘는 폭리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전세의 양상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금의 가격이 들쑥 날쑥 했다고 한다. 당시 북군에서 발행한 화폐가 그린백(Greenback)이라 불리는 리걸 액트였다. 원래 미국에서 발행하는 화폐는 기본적으로 뱅크노트라 해서 금으로 교환해 주는 일종의 증서였다. 그런데 그린백은 그런 금교환 조건이 없었다. 그래서 남군이 유리할 때는 금값이 올랐고, 북군이 유리할 때는 금값이 내려갔다고 한다. 이때의 거래를 통해 단 몇일만에 16만달러를 벌게 되는데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2천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남북전쟁은 가뜩이나 부자였던 JP모건이 천문학적 수준으로 재산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게 했다.
음모론자들은 JP모건이 속해 있다고 하는 세계적 비밀결사 조직인 일루미나티(Illuminati)가 남북전쟁의 향방을 조작하는 사이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남북전쟁, 보불전쟁 등 잇다른 전쟁은 모건 가문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곧이어 1870년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0-1871)이 터진다. 기회는 찬스다라고 인식한 JS모건은 막대한 전쟁 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프랑스를 도와주는데 10~15%로까지 하락 아니 추락한 프랑스 국재를 매입하여 프랑스에 돈을 대준다. 많은 사람들이 망한 나라의 국채를 어떻게 살 수 있는가, 프랑스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것이다라고 했지만 모건은 여지껏 프랑스는 돈을 안갚은 적이 없다는 신뢰를 갖고 프랑스 채권을 매입했고 이후 프랑스 재정이 정상화되자 채권을 정상가로 넘겨 막대한 이득을 챙기게 된다.
JP모건이 망해가는 프랑스 국채를 살 수 있었던 자신감 내지 확신을 표현하는 일화하나가 있다. JP모건은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다. 영국, 그리스왕국, 러시아제국, 심지어 모로코에 있었을 때도 식당의 웨이터가 식재료는 모두 프랑스산입니다라고 했더니 JP모건은 왜 유럽에는 죄다 음식이 프랑스산이냐, 다른 곳에서는 농사를 안짓느냐라고 했더니 웨이터가 스페인 이태리에서 조금 하긴 하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JP모건은 프랑스의 농업 능력에 감탄을 하며, 프랑스가 유럽 식량 생산의 40%를 책임지고 있으며 품질 또한 좋아 프랑스의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프랑스는 1년만에 50억 프랑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갚았다고 한다.
3. 모건 앤 컴퍼니
P모건은 1871년에 필라델피아에서 은행업을 하는 앤서니 드렉셀(Anthony Drexel, 1826-1893)과 뉴욕에 드랙셀 모건 앤 컴퍼니(Drexel, Morgan Company)를 설립한다. 이후 드렉셀이 사망하자 회사 이름을 모건앤컴퍼니(Morgan Co.)로 바꿨다. 그 회사가 있던 자리가 지금 모건 하우스라 일컬어지는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곳이며 뉴욕증권거래소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월스트리트와 브로드스트리트가 교차한 위치에 있다해서 더 코너(The Corner)라 불리기도 한다. 뉴욕에 가면 꼭 방문해야 할 곳이다. 건물의 입구가 코너에 있다.
JP모건은 전쟁을 통해 자산을 축적하게 되고 드렉셀을 만나 본격적인 금융업으로의 진출을 하게 된다.
뉴욕을 방문하여 월스트리트의 더 코너를 가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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