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 #금융 #미국금융 #아빠의금융역사이야기
1. 제이미 다이먼의 등장
이후 고만 고만한 JP모건사는 덩치는 컸으나 업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06년 현재 JP모건 체이스 은행의 CEO인 제이미 다이먼이 등장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원래는 이 사람은 증권 브로커였다고 한다. 이후 샌디 웨일(Sanford I. "Sandy" Weill)이라는 사람과 함께 그의 조수 역할을 하면서 씨티은행을 창업하게 된다. 1998년도에 샌디 웨일의 딸을 승진시켜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재밌는 것은 해고 통보를 받고 어떠한 이유도 대지 않고 짐 챙겨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수년 동안을 백수로 지냈는데,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등 많은 유수의 기업으로부터 영입 콜을 받았으나 자기는 금융인이므로 그런 일반 회사에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하면서 쿨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0년 시카고의 뱅크원이라는 은행의 CEO가 되었다. 제이미가 뱅크원을 선택했다고 뉴스 기사화되었다. 뱅크원의 당일 주가는 20%나 급등했다고 한다. 적자에 허덕이던 뱅크원은 2002년에 22억 달러 흑자를 내고 7천 명의 직원을 해고하는 등 극약처방을 통해 주가를 취임 당시 대비 60% 이상 끌어올렸다.
2. 뱅크원의 인수
뱅크원은 2005년에 JP모건에 인수가 된다. 그러면서 JP모건의 CEO로 발탁이 된다. 그는 JP모건의 사업적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데 주력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베어스턴스, 워싱턴 뮤추얼을 인수하면서 투자은행과 저축은행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체이스 맨하탄 은행을 인수하면서 상업은행의 영역에게도 들어간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 위기 때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을 인수한다. 이 은행 인수를 통해 VVIP를 대상으로 하는 PB 영역까지 진출하였다. 지역적으로도 동부와 서부의 주요 은행을 인수하여 지역적 측면에서도 금융을 장악하게 된다.
제이미 덕분에 JP모건은 비로소 명실상부 업계 1위로 등극을 하게 된다. 반면 제이미를 쫓아낸 씨티은행은 1998년부터 줄곧 업계 1위를 구가하다가 2005년 이후 4위로 주저앉았다.
3. 스타가 된 다이먼
다이먼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가 추진했던 정책들이 번번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면서 ‘위기관리의 귀재’로 불리며 월가의 황제가 되었다. 그와 친한 가이트너가 2009년 오바마 행정부의 재무장관으로 발탁되면서 다이먼은 월가뿐 아니라 연준과 재무부를 막후에서 움직이는 실세가 되었다. 그는 JP모건사의 지분을 1% 가지고 있다. 현재 그는 핸섬한 외모와 젠틀한 말투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며 대선 후보로도 트럼프와 바이든의 대안으로 거론이 되고 있기도 하다.
Daddy's Point of View=========================================================
JP모건의 역사는 미국의 금융사라 할 정도로 미국을 대표하는 금융 회사이다. 돈을 빌려주는 상업 은행에서 출발하여 채권 판매 대행, 관계 금융사, 벤처캐피털 등등 현대 금융업에 나오는 거의 모든 분야의 토대를 만들어낸 회사이다. 그 회사를 일군 JS모건, JP모건, 잭모건 등 모건 3대의 이야기도 파란만장했다. 지금도 모건 가문은 전면에 나서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미국의 금융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정리하다 보니 또 다른 로스차일드 가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으로 JP모건의 역사에 대해 연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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