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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합중국, 즉 미국은 어떻게 세계 최강국이 되었나
너희들도 잘 알다시피 미국은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지. 미국이 공식적으로 탄생한 것이 1776년이니 지금까지 약 250년밖에 안되는데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모든 부분에서 세계를 휘어잡고 소위 경찰국가, 리더 국가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지금부터 이야기해 보도록 할게.
1. 미국의 개요
미국은 지금 북아메리카에 본토를 가지고 북아메리카 대륙의 북쪽 끝단에 위치한 알래스카와 태평양 한가운데의 하와이 제도를 영토로 가지고 있어 그 면적이 거의 천만㎢, 정확히는 9,834,000㎢로 10만㎢ 정도인 한반도 면적의 약 100배에 육박하지.
▶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하였다고 주장하는 중국의 정화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 정화는 1418년에, 콜럼버스는 1492년에 발견하였다고 하는데, 정설로는 문명세계가 이 대륙을 발견한 것은 콜럼버스가 최초라고 여겨지고 있다.
▶ 콜럼버스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는 바르셀로나 항구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Yoon's Fam. 우리도 신세계를 탐험하도록 하자.
이 땅은 너희들이 잘 알다시피 1492년 대항해시대의 제노바 출신의 탐험가 콜럼버스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지. 정확히는 유럽 사람들에게 처음 발견된 거지. 공식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문명사회에서 아메리카 대륙이 처음 발견된 때는 중국 명나라 영락제 때의 환관이자 무관이자 탐험가인 정화에 의해 발견된 1418년이라는 주장도 있지. 어찌 됐든 그때에도 이미 아메리카 대륙에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문화를 꾸리며 살고 있었어. 소위 말하는 아메리카 인디언이라 일컬어지는 원주민은 생김새가 동아시아인과 유사하여 12,000년에서 4만 년 전 빙하기 때 건너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 콜럼버스는 4차에 걸쳐 아메리카 대륙을 다녀가지. 그는 유럽인의 아메리카 식민지화를 개척한 인물이며 그로 인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들의 문화와 민족성을 잃고 만다. 한편 아메리카 대륙 개척을 통해 감자가 유럽과 아시아에 전해져 기근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미국이 역사에 본격적으로 출현한 15세기에는 유럽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중심으로 해외 식민지를 마구잡이로 넓혀가는 대항해 시대였어. 콜럼버스는 세계는 둥글기 때문에 유럽에서 서쪽으로 가면 동방, 즉 인도에 더 가깝게 다다를 수 있다고 주장했어. 그래서 그걸 증명하기 위해 1485년 그가 살고 있던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2세를 찾아가 신항로 개척을 위한 후원을 요청하게 되지. 하지만 당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해안 탐사에 보다 적극적이었고 서쪽 항로 개척이 현실성이 없다는 판단으로 콜럼버스의 제안을 거절하지. 포기하지 않은 콜럼버스는 에스파냐를 찾아가 여러 차례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당시 여왕 이사벨 1세가 전격적으로 후원 약속을 해주게 되지. 정식적으로 계약을 한 날짜가 1492년 4월 30일이야. 콜럼버스는 왜 이렇게 신항로를 개척하려 했을까? 그렇지, 다 돈 때문이지. 콜럼버스는 자기가 새로운 항로를 통해 얻게 되는 지역의 총독과 얻은 수익의 10%를 갖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던 거야.
▶ 1492년 스페인의 팔로스항을 떠난 지 40여 일 만에 산살바도르에 상륙한 콜럼버스와 그의 탐험대. 평화롭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옥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2.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그래서 어쨌든 콜럼버스는 그해 그가 계산한 신항로를 통해 육지를 발견하게 되지. 그가 에스파냐의 팔로 그 항에서 산타마리아호를 타고 떠난 지 33일 만에 육지를 발견했는데, 그게 원주민들이 과나하니라고 부르는 섬에 도착하게 되지. 지금의 카리브해에 있는 서인도제도야. 그는 그곳을 산살바도르라 명명하고 스페인 영토임을 선언하게 돼. 콜럼버스는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지역의 특산물뿐만 아니라 원주민까지 배에 싣고 갔다고 해. 콜럼버스는 그곳을 아시아의 일부라고 생각했고 현지 주민들을 인디오라 불렀어. 인디오는 인도 사람이라는 뜻이야. 아주 지 맘대로지. 어쨌든 그는 그 이후에도 네 차례의 항해를 더 하게 돼. 그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개척한 그곳이 아시아의 한 부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정착한 곳에서 총독 역할을 하며 원주민을 노예로 삼고 무자비한 학살을 했다는 거야.
여기서 유명한 일화 하나를 얘기하고 넘어갈게.
콜럼버스가 항해를 마치고 돌아와 축하 파티를 열었다. 콜럼버스의 탐험을 깎아내리고 싶어 하는 몇몇 인사들이 누구나 서쪽으로 가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일이라 하였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그들에게 달걀을 가져와 탁자 위에 세워보라 한다. 당연히 아무도 세우지 못했지. 그런데 콜럼버스가 달걀을 깨서 세운 거야. 그랬더니 다들 그런 건 나도 하지, 치.라고 얘기하자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라며 그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고 해. 이것이 그 유명한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전해지는 일화야. 이는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벤조니가 1565년 그의 저서 신세계의 역사에 소개해서 발상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업적을 세웠을 때 일컫는 말이 되었어. 그런데 이마저도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가 있어. 흠
어쨌든 나중에 그곳이 인도가 아니라 신대륙이라고 알려지게 된 것은 피렌체 출신의 또 다른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서야. 그는 1497년부터 1504년까지 신항로를 통해 새로운 대륙으로 탐험, 보다 정확히는 약탈을 하러 갔지. 그러면서 그곳을 자기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 즉 아메리고의 땅이라고 명명하게 되니 아직까지 그곳을 아메리카로 부르고 있어.
▶ 17세기 유럽 열강들에 의한 아메리카 식민지 형국
이후에도 신대륙에 유럽의 약탈자들이 계속해서 들어왔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먼저 시작하고 이 땅이 괜찮아 보이니 옆의 영국과 프랑스도 뒤늦게 아메리카 대륙으로 들어오게 되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주로 플로리다와 중남미에 정착하면서 식민지를 건설하여 금광 개발과 노예사냥을 하고 있었고 후발주자인 네덜란드, 영국과 프랑스는 주로 북아메리카를 먹어가고 있었어. 북아메리카에는 1607년 영국이 현 버지니아 지역에 제임스타운을, 프랑스는 1608년에 퀘벡을, 1624년에는 네덜란드는 맨해튼에 식민지를 건설하게 돼.
▶ 1620년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메이플라워호 (Mayflower)
한편 영국에서는 1600년대에 사이비 취급을 받아오던 청교도 신자들이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영국에서 탈출하여 네덜란드로 건너가 살게 되지. 네덜란드에서도 여전히 이주 노동자 취급을 받으며 3D 업으로 연명하며 근근이 살고 있었어. 그러던 와중에 신대륙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1620년 9월 16일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의 플리머스를 출발하여 지금의 매사추세츠 주에 도착하게 돼. 이때 그들 자신을 Pilgrim Fathers, 즉 순례자들로 자칭하고 35명의 신도와 67명의 일반인이 건너오게 되지. 이들이 미국의 최초 개척자로 여겨지고 있어.
그런데 왜 하필 청교도들이었을까? 청교도는 기존 그리스도교와 뭐가 다를까? 이건 다른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 1621년 청교도 이주민들과 원주민간들이 함께한 최초의 추수감사절. 추수감사절은 매년 미국(11월 넷째 주 목요일)과 캐나다(10월 둘째 주 월요일)에서만 이어지는 전통이다.
이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주의자들과 달리 원주민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해. 현지인의 도움을 받으니 얼마나 쉽게 정착할 수 있었겠어. 그들과 함께 조화로운 생활을 하며 첫 수확을 이뤄냈던 1621년 가을에 커다란 잔치를 벌이고 그들을 도와줬던 원주민 전사들을 초대해 같이 즐겼다고 해. 이들은 칠면조, 호박, 옥수수 등으로 3일 밤낮을 아주 씐나게 놀았다고 해. 이게 최초의 Thanksgiving Day, 즉 추수감사절인 거야.
▶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총 700여 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나름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유라시아가 어떻게 문명을 이루어갔고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왜 유럽인들에 의해서 지배되었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10년 뒤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이 전파한 천연두에 의해 거의 몰살 되사 시피 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유럽인들이 몰고 온 가축들에 의해 아메리카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희한한 전염병들이 돌게 되어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은 속절없이 죽어 나가고 말았던 거야.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는 대략 8천만이었다고 해. 그런데 이 많던 인구가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 때문에 8백만까지 줄었다고 해.
반면 영국 이주민들은 식민지에서의 노동을 통해 부와 자본을 축적하면서 심지어 1628년에는 매사추세츠만 식민지 회사까지 설립하게 되지. 이로 인해 이주민들의 대거 신대륙 식민지로 유입하게 된다. 이때는 핍박받는 청교도들뿐만 아니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건너온 사람들로 인구가 넘쳐나게 돼.
▶ 네덜란드는 17세기 허드슨강 유역에 뉴네덜란드를 개척하고 1626년 맨해튼을 이 지역 원주민에게 24달러를 주고 매입하면서 뉴암스테르담을 건설한다. 이후 1664년 네덜란드는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이 지역을 영국에게 할양하고 영국은 이 지역을 왕인 찰스 2세의 동생 요크공(후일 제임스 2세로 왕에 등극)의 이름을 따서 뉴욕(New York)이라 칭하게 된다. 세계 최대의 도시 뉴욕의 탄생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미국 북동부는 영국을 비롯해 프랑스, 네덜란드와 원주민 간에 쉴 새 없는 전투가 벌어지게 되지. 그러던 와중에 영국과 네덜란드가 1652년부터 1784년까지 4차례의 전쟁이 벌어지고 네덜란드는 결국 맨해튼을 영국에게 할양하게 된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뉴네덜란드는 영국령으로 바뀌면서 뉴암스테르담이 뉴욕으로 바뀌게 돼.
영국 본토에서는 때마침 1688년 명예혁명이 일어나 정치적 혼란기에 있었고 다른 연방 식민지에 비해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어. 그래서 미국의 식민지에서는 각자 자체적인 정치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지. 그러면서 100여 년이 흘러가면서 높은 출산율과 계속해서 유입되는 이주민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잡아들여온 노예들로 인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재밌는 것은 미국 식민지인의 평균 수명이 영국인들보다 약 10년이나 많았다고 해. 그만큼 살기 좋았다는 얘기지.
하지만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서 본토 영국과 아메리카 식민지는 갈등이 극에 달하게 되지. 이 사건은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쟁탈전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거야.
▶ 1756년부터 1763년까지 영국과 프로이센 vs 프랑스,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 러시아 등이 벌인 유럽 대전이다. 전쟁의 명분은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에게 복수하기 위해 각 동맹국이 벌인 전쟁이나 실상은 유럽 내에서의 패권과 유럽밖에 있는 식민지 쟁탈전을 놓고 격돌한 것이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인도에서 전투가 발생하였고 결국 영국과 프로이센이 승리하여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식민지 확장, 프로이센은 유럽에서의 존재감 부상의 훈장을 얻게 된다.
프랑스가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를 계속 확장하자 영국의 식민지와 잦은 전투가 발생하게 되지. 그러면서 1754년 영국과 프랑스는 결국 본토인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붙게 돼. 결국 7년 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에서 프랑스는 영국에 패해 아메리카 식민지 전부를 영국에 할양하게 되지. 영국은 기존 식민지의 4배에 달하는 영토를 갖게 되고 식민지 숫자는 13개로 늘어나고 인구는 260여만 명으로 영국 본토의 3분의 1까지 많아지게 돼.
대표 없이 과세 없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 아메리카 식민지 대표의 런던 의회 진입을 허락하지 않은 상태에서 설탕법, 인지세법, 타운젠드법 등 엄청난 과세에 항의해 나온 슬로건. 이후 독립전쟁의 슬로건으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이 프랑스와 전쟁에서 이겼다고는 하지만 전쟁에 쏟아 부운 돈이 어마무시했다고 해. 6천5백만 파운드라고 하네. 지금으로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금액이었다고 하지. 그래서 영국은 이 돈을 만회하려고 미국 식민지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게 된 거야. 거의 모든 소비재에 세금을 매기게 되지. 심지어 유서에도 세금을 매겼다고 해. 그 유명한 대표 없이 과세 없다, 영어로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이지. 식민지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이 영국 중앙 의회에 참석을 못 하게 하면서 세금을 부과해 이런 슬로건과 불만이 나오게 된 거지. 이는 미국 독립전쟁 때 슬로건으로 사용되기도 해.
▶ 보스턴 차 사건은 사실 차 밀수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겼던 밀수업자와 유통업자들이 벌인 촌극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얘네들은 이 사건을 Boston Tea Party라고 하는데, 이걸 파티라고 하네.
그래서 영국은 모든 과세를 없애 버린다. 홍차만 빼고. 그런데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통해 동양의 홍차를 미국 식민지에 팔았는데 이때 관세가 없어 식민지에서 생산하는 차에만 세금이 붙어 결국 식민지 경제에 타격을 가하게 되지. 이러한 꼼수에 미국 식민지인들은 더욱 큰 저항을 하게 되지. 급기야 1773년 12월 16일 항구에 정박해 있던 홍차 수입선에 인디언 분장을 한 식민지인들이 몰래 들어가 홍차 박스를 모조리 바다로 던져 버려. 이게 보스턴 차 사건이야. 당연히 영국에서는 열이 받겠지. 그래서 보스턴 항구를 봉쇄해 버려. 그리고 더욱 잔혹한 과세를 하게 되지. 이른바 참을 수 없는 법, 그들 말로는 Intolerable Acts 또는 Coercive Acts을 제정하여 과제뿐만 아니라 시민의 자유권을 제한하여 직접 통치를 강화하게 되지.
3. 독립선언
이에 각자 생활하던 미국의 식민지 13개 주가 똘똘 뭉쳐 대응하게 돼. 그래서 1774년 9월 13개 주의 대표들이 모여 제1차 대륙회의를 개최하게 되지. 영국의 공격에 공동 대응하자고 합의하게 되지. 그러던 중 1774년 4월 9일 매사추세츠에서 영국군과 식민지 군간에 전투가 발발하게 돼. 미국독립전쟁을 알리는 서막이 된 거야. 그래서 1776년 7월 4일 13개 주는 필라델피아에 다시 모여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으로 작성한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채택하고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대륙 연합군을 구성해서 영국에 공동 대항하기로 하지.
식민지 연합은 영국 왕에 대한 모든 의무에서 벗어날 것이고
대영 제국과 맺고 있던 모든 정치적 관계는 완전히 해체될 것이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 미국 독립선언서 중 일부
그래서 13개 주는 각자의 영토와 국가적 권리를 갖게 되며 서로 연합된 미주 연합국임을 선포하게 돼. 영국은 이들의 선언을 무시하며 본토에서 130척에 달하는 전함과 3만 명의 정예 정규군을 투입하여 식민지의 반란을 잠재우려 했어. 뉴욕에 당도한 영국군의 압도적인 무력에 고작 1만 9천 명 정도였던 식민지 군은 상대가 되지 않았어. 하지만 식민지 연합군은 게릴라 전투와 영국군의 오만과 실수로 점차 식민지 연합군 쪽으로 유리하게 되었지.
▶ 최초의 성조기. 1777년부터 사용된 미국의 최초 국기. 13개 주를 의미하는 13개의 별과 줄로 표시되어 있다. 처음에는 별 대신 유니언잭 로고가 삽입되어 있었다. 미연방에 포함된 주가 늘어날수록 별을 추가하여 현재 마지막으로 합류한 하와이 주를 포함해 총 51개의 별이 있고 13개의 하얀색과 빨간색의 줄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전황이 영국에 불리하게 되자, 7년 전쟁으로 탈탈 털렸던 프랑스가 1778년 2월 프랑스가 식민지 연합군을 도와 영국에 항전하는 결정을 하게 되고 이어스 스페인과 네덜란드까지 미국 편에 서게 돼. 그래서 영국 대 미국 식민지 연합,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의 연합국 간의 국제전이 되고 말지. 프랑스는 본토에서 영국의 해상을 막는 역할을 하고 스페인은 식민지 지역에서 영국군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여 영국의 식민지를 흡수하게 돼. 전세가 불리해지자 영국군은 요크타운에 침입하여 이 지역을 점령하고 물자를 약탈하게 되지. 이에 식민지 연합군, 프랑스 군은 양동 작전으로 영국군을 압박하여 결국 영국군은 항복하게 되지. 결국 영국은 본토에서의 종전에 대한 여론이 득세하여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을 통해 미국의 공식적 독립을 인정하게 돼. 미국은 독립국으로써의 지위를 인정받음은 물론이고 미시시피강 동쪽의 영토에 대한 주권 또한 승인받아 영토의 확장까지 이루게 되지. 이때 미국 연합국의 수도는 뉴욕이었는데 1787년에 필라델피아 헌법 회의를 조직하고 89년에 미국 헌법이 비준되고 초대 상하원 의회가 출범하면서 조지 워싱턴이 연방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수도를 필라델피아로 옮기게 돼. 이후 1800년에 현재까지 이어지는 워싱턴DC가 수도로 정해지지.
이후 노예제에 대한 내부 갈등이 전쟁으로 터지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에 하기로 하자.
Daddy's Point of View =======================================================================
미국의 탄생에 대해서 알아보았어. 아빠는 미국이 완전히 새로운 나라라고 보지 않아. 오히려 영국인들이 건설한 또 다른 영국이라는 편이 더 맞는 것 같아. 200년이 흐르면서 언어와 문화도 살짝 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영국적인 풍모가 스며들어 있고 영국 외에 다른 나라 출신들을 차별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영국의 식민지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나라들이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분리된 경우가 있는데 미국도 영국계의 지배계층과 기타 유럽인, 아시아, 흑인들이 피지배계층을 이루고 있지. 예전 발해도 이런 상황이지 않았을까 한다.
결국 영국은 17세기 이후 세계의 패권을 이룩하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명성을 높였고 이후에는 그 헤게모니가 미국으로 넘어간 모습이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미국이 어떻게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었는지 다음 시간에 알아보도록 하자.
#미국의역사 #크리스토퍼콜럼버스 #정화 #콜럼버스의달갈 #아메리고베스푸치 #메이플라워 #청교도 #추수감사절 #천연두 #총균쇠 #메사추세츠만식민지회사 #뉴암스테르담 #뉴욕 #보스톤차사건 #대표없이과세없다 #미국독립전쟁 #7년전쟁 #미국독립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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