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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혹시 나비효과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야. 미세한 변화, 혹은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의미하는 말이지. 기술의 발전은 종종 이런 나비효과를 불러오는데, 특히 전쟁에서도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온 극적인 예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1853년에 발발한 크림전쟁이었지.
크림전쟁은 1853년부터 1856년까지 약 3년간 크림반도에서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왕국의 연합군 간에 벌어진 전쟁이었다. 어느 전쟁이나 그렇듯 전쟁의 발단은 한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하지 않는다. 크림전쟁도 예외는 아니다. 이 전쟁에는 러시아의 남하 야욕, 이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방어, 프랑스 내부 불만의 해소, 오스만 제국의 쇠퇴 등이 원인이 되었다.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은 당시 오스만의 영토에 있었으나 러시아가 오스만과의 전쟁으로 이곳의 관리권을 러시아가 획득하며 동방정교 영향권에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 이후 그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 로마기독교의 수장임을 자처하며 오스만으로부터 성지의 관리권을 요구했다. 보스포루스의 병자로 전락한 오스만은 프랑스에게 넘겨주려 했으나 이에 다시 러시아가 태클을 걸었다. 프랑스는 흑해 연안에서 무력시위를 벌이자 러시아는 지금 루마니아 영토이지만 당시 오스만의 영토였던 몰다비아와 왈라키아를 침공한다. 이에 오스만은 주저주저하다가 영국과 프랑스의 꼬드김에 빠져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 프랑스와 영국이 오스만 편에 섰고 사르데냐 왕국까지 가세하며 국제전이 되었다. 참전 인원만 150만인 대규모 전쟁이었다. 전쟁은 러시아의 패배로 끝이 났다. 러시아는 황제 니콜라이1세가 전쟁 중 사망하고 내부적으로 근대화 혁명이 일어나 1861년 농노해방운동을 비롯한 개혁사업이 진행되면서 진통을 겪게 된다.
그런데 크림전쟁은 유달리 인명피해가 컸다. 총 53만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는데, 이 숫자는 20년간 유럽에서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의 사상자수와 맞먹는 것이었다. 크림전쟁의 사상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전사 3만 5천여 명, 부상으로 인한 사망 3만 7천여 명, 부상 8만여 명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비전투 사망이 무려 37만 7천여 명에 달했다는 것이다. 사상자의 71%가 전투가 아닌 질병으로 사망했던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으나, 무엇보다도 무기의 발달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특히 총과 대포의 발전이 극적이었다.
먼저 총이야기를 해볼까? 이전까지 유럽의 전장에서 병사들이 사용한 총은 활강식 머스킷 총이 주류였다. 활강식이란 총신 안에 나선형 강선이 없는 총신을 뜻한다. 그리고 이 머스킷 총에는 둥근 납 구슬이 총탄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공기역학적으로 별로 좋지 못한 구조였다. 따라서 활강식 머스켓 총은 유효 사거리도 10야드, 즉 90m가 한계였다. 사실 90m도 아주 너그럽게 표현한 수치이다. 활강식 머스킷총은 50m만 넘어가도 명중을 기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보병들이 밀집해서 적을 향해 일제 사격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이 때문에 당시 보병 전술은 전열식이 가장 표준적인 전투 방식이었다. 한마디로 병사들이 2열, 혹은 3열로 빽빽이 늘어서서 천천히 발맞추어 진격하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크림전쟁 직전, 병사들의 머스킷 총에 혁신적인 기술이 접목된다. 먼저 러시아는 벨트 탄환을 사용하는 라이플을 사용했다. 기존 둥근 총탄에 벨트 모양의 띠를 두른 이 탄은 벨트 강선이 파여진 총신 안에서 회전을 하며 약 270m를 날아갈 수 있었다. 기존 머스킷 총의 3배였다. 반면 영국군과 프랑스군은 이보다 더욱 진보된 원추형의 미니에탄을 사용한 라이플을 사용했다. 원추형 탄은 공기역학적으로도 유리해서 무려 360m의 유효사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총들은 그 이전까지 안전거리에 있다고 생각한 병사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대포의 발전도 획기적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까지 대포는 그저 커다란 쇠 구슬을 날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공성전이나 보병의 밀집대형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대포가 필요했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좋은 무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1820년대부터 작열탄을 쓰는 대포가 출현하게 된다. 쉽게 말해 단순히 둥근 쇳덩어리를 쏘는 것이 아니라, 폭발로 인한 폭풍과 파편을 일으키는 효과를 낼 수 있는 포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살상 효과는 이전에 비해 약 3배나 높았다. 게다가 대포에서도 강선기술이 적용되어 구식 대포에 비해 훨씬 더 먼 거리를 정확히 날아갈 수 있었다. 대포가 훨씬 강력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일선 지휘관들의 낡은 고정관념이었다. 당시 지휘관들은 여전히 과거의 전술인 밀집 전열 보병 전술을 고집했다. 무기의 엄청난 발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다. 전열 보병들은 적들과 거리가 약 2-30m가 되면 정지해서 일제 사격을 가했다. 이를 위해선 밀집대형을 이루고 천천히 적에게 접근해야만 했다. 그런데 대형을 만들기 위해 정렬하고 있던 병사들에게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먼 거리에서 날아온 포탄이었다. 지휘관과 병사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격을 서둘렀다. 하지만 그들 앞에는 더욱 참혹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력해진 총탄에 수많은 병사들이 총 한번 못 쏴 보고 쓰러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양측의 보병들은 신형 대포와 소총에 갈가리 찢긴 채 허망하게 죽어갔다. 엄청난 무기 기술의 발전으로 서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설상가성으로 지휘관들의 전술 방식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눈앞에서 뻔히 부하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기존의 낡은 전술만을 고집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진짜 문제가 발생한다.
이전에 비해 엄청난 사상자들이 야전병원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예전 수준 규모의 야전병원을 운영하던 참전국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즉, 야전병원 의료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다. 당연히 야전병원은 생지옥으로 변한다. 더러워진 붕대를 돌려쓰는 일은 다반사였고 심지어 병사들은 신고 있던 스타킹을 벗어 붕대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여기에 정원을 한참 초과한 인원이 병상에 빽빽이 들어찼다. 전염병이 안도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가벼운 부상으로 충분히 살 수 있었던 병사들도 하나둘씩 질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숫자는 무려 30만이 넘어갔다. 기술의 발전을 전술이 전혀 따라가지 못한 결과 지옥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때 바로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라고 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간호사임과 동시에 통계학자이기도 했다. 나이팅게일은 전쟁터에서 죽는 병사보다 병원에서 죽는 병사가 더 많다는 통계를 기반으로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고쳐 나갔다. 그리고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사망자 수치가 확 줄어든 것이다.
우리는 보통 나이팅게일의 헌신적인 봉사만을 기억하지만, 실제 중요한 점은 그녀가 시스템의 허점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했다는데 있다. 우리는 신기술의 개발을 보면서 보통 긍정적인 효과만을 생각한다. 그만큼 기술혁신이란 말은 아주 매력적인 단어이다. 하지만 혁신의 결과물을 실제 적용하기 위해선 혁신의 내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시스템을 재정립해야 한다. 혁신은 절대 낡은 방식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의 파급 효과라는 것은 항상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상당한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문제는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즉시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기술 발전에 따른 나비효과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통해 충분히 대응 가능할 것이다.
Daddy’s Point of View =========================
이번에는 혁신을 이야기했다. 혁신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익숙한 것들, 시스템이나 사고방식들의 문제점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최선인가? 이 방법만이 능사일까?라는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문제점이 발견되고 문제점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러면 솔루션이 나오게 된다. 그 솔루션을 체계화하면 혁신이 되는 것이다. 위에서는 전쟁의 예를 들었지만 현대에서는 기업 간에 이러한 혁신의 예가 많이 나온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그들은 주변의 현상을 단순히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하면 어떨까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졌기 때문에 맥킨토시나 전기차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 수 있는 상품을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혁신은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전을 받는다. 그 도전을 이겨내고, 또는 무시해야지만 혁신을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너희들에게 당연하게 보이는 낡은 관습, 시스템, 제품은 무엇인가? 그것부터가 혁신의 출발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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