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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마라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42.195km의 장거리 달리기, 황영조, 손기정 등을 떠 올릴 것이다. 하지만 마라톤은 역사적 아픔이 있는 전투에서 시작된 것이며 고대 중동, 그리스의 한판 승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어.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마라톤은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투에서 절대적인 열세를 극복한 그리스군이 마라톤 평원에서 대적한 페르시아군을 무찌르고 그 승리의 소식을 전하려 아테네까지 달려간 병사,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를 기리기 위해 그 똑같은 거리만큼을 달려 순위를 가리는 육상 운동 경기라고 알고 있을 것이야. 그래서 페르시아의 후손인 이란은 마라톤을 하지 않는다고 많이들 알고 있지. 하지만 사실 이란에도 마라토너들은 있어. 그렇지만 실제로는 아테네 승리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간 것이 아니라 사실은 페르시아군의 아테네 우회 진격 소식을 알려 스파르타의 지원을 요청하고자 달렸던 거였고, 달려간 거리도 42km가 아니라 240km나 되었다고 해.
살짝 이야기를 삼천포로 빠져가서 마라톤에 대해서 좀 이야기하고 넘어갈까 해. 페이디피데스는 240km를 뛰어 갔다고 하는데, 이를 이틀 동안에 뛰어 갔다고 하지. 그러면 하루에 120km를 달렸다는 얘기지. 실제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그리스에서는 Spartathlon이라는 경기로 실제 240km를 뛰는 육상 경기가 있다고 해. 1982년에 처음 개최되었는데, 그때는 36시간 주파에 성공했는데, 현재 세계 신기록으로는 남자 19시간 55분 15초, 여자 22시간 35분 31초라고 해. 헐 거의 하루 종일 뛰어다녔단 얘긴데.. ㅠㅠ 그러면 왜 지금 마라톤은 42.195km일까? 마라톤이 처음으로 스포츠 종목으로 구현된 것은 올림픽이 태어나면서 이지. 올림픽을 부활시켰던 쿠베르탱이 올림픽에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서 아테네 병사 페이디피데스의 서사를 가미했다는 거야. 그래서 거리를 아테네와 마라톤의 대략적인 거리로 42km로 정해놓고 달렸는데, 제4회 런던 올림픽 때 영국의 왕실에서 선수들의 출발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해서 출발선을 뒤로 밀었는데 그 거리가 195m였다고 해. 그래서 마라톤의 공식 거리가 42.195km로 되었다고 하지. 뭐 이 정도 알면 기본적 상식 수준은 될 거야. 하지만 역사의 모든 순간이 그렇듯이 그 안에는 많은 사연과 숨어있는 이야기들이 있게 마련이지. 이번에 아빠는 마라톤 전투에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갈리는 게임이다. 일대 일의 싸움이 아니라 수많은 전사와 각종 무기를 들고 상대방이 죽어야 또는 항복해야 끝나는 게임이지.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군사들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그 움직임을 컨트롤하는 리더의 중요성이 매우 중요한데, 이 마라톤 전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어.
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오리엔트 문명권 전체를 통일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제국이었어. BC559년부터 BC330년까지 229년간 존속한 페르시아 제국은 전성기 시절 오늘날 이란을 근거지로 중동, 터키 및 소아시아 지방을 비롯해 북아프리카와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중앙아시아와 발칸반도 일대에까지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어. 페르시아 제국의 경제적 풍요는 당시 그 어떤 왕조와도 비교가 불가했지. 페르시아는 제국인 만큼 여러 곳에 도시를 두었는데, 페르시아의 도시 중 하나, 페르세폴리스의 1년 재정 수입은 그리스에서 가장 크고 재정 사정이 괜찮았던 아테네의 300배에 달했다고 해. 사실 당시 그리스는 작은 도시국가의 연합체였어. 말이 도시국가이지 페르시아와 같은 대제국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저 변방의 작은 촌락에 불과했던 거야.
그런데, 페르시아는 왜 그리스를 침공했을까?
무릇 제국에서 가장 골치 아픈 것 중의 하나는 변방의 반란이었을 거야. 페르시아 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조금만 큼을 주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곤 했지. 그리고 이 무렵 제국의 점령지였던 소아시아의 이오니아 지방에서 반 페르시아 봉기가 일어나게 돼. 그런데 이 반란의 배후에는 놀랍게도 그리스가 있었어. 그동안 이오니아 지방에서 밀을 수입해오던 그리스는 좀 더 싼 가격에 밀을 수입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지.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는 이 반란을 지원했던 거야. 하지만 그리스는 페르시아 제국의 막강함을 계산에 넣지 않았지. 페르시아는 즉시 토벌군을 보내 반란을 진압했어. 그리고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던 중에 이 반란의 배후에 아테네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이윽고 BC490년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침공하게 돼. 그리고 페르시아와 아테네 사이의 운명의 결전이 마라톤에서 벌어지게 되지.
당시 아테네군은 전원 보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어. 기병은 없었고 활은 비겁한 무기라는 인식이 강해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어. 대신 청동 갑옷과 청동 방패, 그리고 청동 칼로 무장한 중장 보병이었어. 반면 페르시아군은 아테네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어. 궁병 위주의 군대였던 페르시아군은 먼 원정을 항상 다녀야 했던 군대였기 때문에 갑옷과 방패도 청동이 아닌 가벼운 가죽으로 만든 것을 사용했어. 백병전에 아주 취약했겠지.
마라톤 언덕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겨우 배치를 막 끝낸 아테네군은 초조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어. 이윽고 수평선 너머로 페르시아의 함선들이 새카맣게 몰려왔고 곧이어 2만 5천이 넘는 페르시아군이 상륙을 했어. 하지만 아테네군은 9,600명의 중장보병이 전부였어. 변방의 소도시 대 대제국이라는 어찌 보면 결과가 뻔한 전투였어. 아테네군은 언덕 위에 자리를 잡고 버티고 있었어. 언덕 위에 있는 아테네군을 공략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달은 페르시아군은 빈집털이를 시도하게 돼. 기병과 보병으로 구성된 1만의 병력을 다시 배에 태워 텅 빈 아테네로 간 것이야. 그리고 나머지 병력 1만 5천으로 아테네군을 견제하기로 하지.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아테네군은 급박했어. 최단 시간 내에 이곳 마라톤에서 페르시아군을 제압한 후, 바로 아테네로 이동해 빈집털이를 노리는 페르시아 상륙군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지.
이때 등장하는 리더가 밀티아데스야. 밀티아데스는 아테네 군사와 함께 전투에 돌입하게 되는데, 전투에 앞서 밀티아데스는 병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지.
패닉에 빠지지 마라. 내 계획대로라면 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아테네도 지킬 수 있다.
이윽고 아테네 중장보병들은 단단한 진형을 갖추고 언덕 위에서부터 페르시아군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지. 페르시아군은 아테네군이 활의 사정거리 안쪽으로 들어오기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페르시아군은 활로 충분히 아테네군을 저지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 드디어 양측의 거리가 좁혀지자 페르시아군은 화살을 발사했어. 그리고 바로 이 순간 밀티아데스는 부하들에게 외치지. “전속력으로 진격!”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밀티아데스는 가장 먼저 앞서 달려 나갔어. 그리고 모든 아테네 중장 보병들이 전속력으로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하지. 페르시아군은 당황했어. 주춤하는 사이 아테네군과 페르시아군의 사이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페르시아군이 급히 날린 화살들은 아테네군의 머리 위로 날아가 버려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리고 곧 처절한 백병전이 시작되었어. 아테네 중장보병에게 경무장의 페르시아군은 철저히 무너지고 말아. 아테네군은 전체적으로 진형을 넓게 펼쳐 페르시아군을 감쌌고 아테네군의 자루 안에 들어간 페르시아군은 지리멸렬하고 말지. 이 전투의 결과는 아테네군의 완승이었어. 9천600여 명의 아테네군 중 전사자는 단 192명이었는데, 반면 페르시아군의 피해는 처참했어. 약 1만 5천의 보병들 중 무려 6천4백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살아남은 병사들도 전투 불능에 가까운 부상을 입었어. 그야말로 아테네군의 완벽한 승리였던 것이지.
그러면 아테네군은 객관적으로 철저하게 열세였던 이 전투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 원인은 바로 공포의 통제에 있었던 거야. 절체절명의 순간에 인간의 반응은 둘 중 하나야. 바로 흥분 아니면 공포이지. 수많은 전투 사례를 살펴보면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쪽은 흥분을, 패색이 짙은 쪽은 공포를 느끼게 되지. 전투 직전, 압도적인 전력 차이의 공포를 느낀 쪽은 아테네 쪽이었겠지. 하지만 리더였던 밀티아데스는 자기가 가장 먼저 뛰쳐나가는 행동을 통해 공포를 통제했어. 행동하는 리더는 이렇게 공포를 통제할 줄 알지. 반면 페르시아군은 예상치 못한 기습에 당황했고 이는 곧 공포로 바뀌어 대패하고 말았지.
Daddy's Point of View ============================================
극한 상황에서 빛나는 리더는 바로 패닉에 빠지지 않는다라는 것이야. 리더에게 플랜 B가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 리더를 바라보고 있는 조직은 빠르게 붕괴되는 거야.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 아테네군의 리더 밀티아데스가 보인 행동하는 리더십은 지금 우리가 갖춰야 할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우리의 역사에 이와 반대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지. 왜가 침략했을 때 수도 한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선조, 구한말 강대국의 외침에 다른 강대국의 뒤로 숨는 고종, 북한군이 남침했을 때 서울을 지키라고 국민들에게 ‘녹화’로 공표하면서 국민들을 버리고 남쪽으로 도망갔던 이승만, 그들은 밀티아데스와는 정 반대로 그들이 먼저 공포의 패닉에 빠지게 되었던 거지. 너희들도 공포를 흥분으로 바꾸는 리더십을 키우길 바래.
#마라톤 #마라톤전투 #페르시아전쟁 #페르시아 #이오니아 #페이디피데스 #밀티아데스 #선조 #고종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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